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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방 설교] 마태복음 5:4, 애통하는 가정

하가다 2025.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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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사랑하는 유가족 여러분, 이 시간 여러분과 함께 말씀을 나누는 마음이 무겁고도 간절합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이별 앞에서 어떤 말로도 깊은 슬픔을 다 담아낼 수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고통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위로와 소망을 전해 줍니다. 오늘 우리는 마태복음 5장 4절의 말씀,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이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약속을 함께 붙잡고자 합니다.

애통함은 믿음의 반응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세상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애통하는 것이 복이 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시선으로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애통하다"는 말은 헬라어로 '펜테오'(πενθέω)입니다. 이는 단순한 슬픔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통곡, 마음을 찢는 아픔을 말합니다. 특히 죄에 대한 슬픔, 그리고 이 세상의 깨어진 현실 속에서 겪는 고통에 대한 깊은 애통을 가리킵니다. 주님은 그런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시며, 오히려 그런 진실한 마음을 가진 자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슬픔을 억지로 눌러 참으려 하지 마십시오. 애통함은 인간의 약함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한 반응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요 11:35).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생명의 주이신 예수님도 죽음 앞에서 애통하셨습니다. 우리의 눈물은 주님이 이해하시고, 함께 흘리시는 눈물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슬픔 속에서 눈물 흘리는 것은 신앙 없는 자의 반응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참된 애통은 믿음의 모습이며, 주님의 위로를 받을 준비된 마음입니다. 이 땅에서 겪는 상실과 고통은 영원한 위로의 자리로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위로는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주님은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약속하십니다. 여기서 "위로"라는 말은 헬라어 '파라칼레오'(παρακαλέω)인데, 이는 단순한 감정적 위안이 아니라, 곁에 함께하면서 격려하고 힘을 북돋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이 단어는 성령님의 사역을 설명할 때에도 사용됩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을 '보혜사'(Parakletos), 곧 위로자라 부르셨습니다.

지금 이 시간 여러분의 곁에 주님의 성령께서 함께하시며,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함께 울고 계십니다. 사람의 말로는 다 위로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위로는 영혼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 회복과 소망을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단지 멀리서 위로의 말씀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친히 우리 곁에 오셔서 함께 아파하시고, 안아주시는 분이십니다.

시편 34편 1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하나님은 상한 마음, 부서진 심령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집안과 함께 계시며, 하나님의 백성인 여러분을 그 크신 팔로 안고 계십니다.

슬픔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이 슬픔은 고통으로만 남지 않고, 언젠가 위로와 감사로 전환될 날이 올 것입니다. 지금은 울고 있지만, 장차는 다시 만날 소망이 있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눈물로 심는 자에게 기쁨의 단을 거두게 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시 126:5).

복음은 영원한 위로의 약속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마태복음 5장은 '산상수훈'으로 불리는 말씀의 시작입니다. 이 말씀은 단지 현실의 윤리적 가르침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백성의 복된 삶을 선언하는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애통하는 자에게 위로가 있다는 것은 단지 이 땅의 위안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완성될 영원한 회복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유가족 여러분, 우리는 주님 안에서 다시 만날 소망을 가진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에, 그를 믿는 우리도 장차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대살로니가전서 4장 13-14절에서 사도 바울은 믿는 자들의 죽음에 대해 "소망 없는 자들과 같이 슬퍼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슬퍼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소망 없이 절망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믿는 자들이기에,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들이기에,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며 오늘의 눈물을 주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아픔은 쉽게 치유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이 눈물이 마지막이 아니며, 이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님은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승리자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분 안에서 부활할 것입니다. 지금은 이별이지만, 주 안에서는 영원한 재회를 소망할 수 있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유가족 여러분, 오늘 우리가 붙잡을 말씀은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니라, 주님의 약속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지금 흘리는 눈물은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눈물을 기억하시고, 친히 닦아주십니다. 주님의 위로가 여러분의 마음을 감싸고, 성령의 임재가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언젠가 주님 안에서 다시 만날 그날까지, 믿음으로 견디고, 주님의 사랑 안에서 서로를 붙들고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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